비를 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가방에서 우산을 꺼냅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 런던에서 우산을 들고 길거리를 걷는 신사가 있었다면, 지나가던 마차 마부들이 흙탕물을 튀기며 욕설을 퍼붓고 행인들이 손가락질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 영국의 상류 사회에서 비를 막기 위해 우산을 쓰는 행위는 “마차를 빌려 탈 재력도 없는 주제에 체면을 차리는 비겁한 행동”이자 “신체적 나약함의 극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태양의 그늘에서 출발하다
우산의 원형은 비가 아닌 햇빛을 가리기 위한 차양(Parasol)이었습니다. 기원전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의 부조와 벽화에 등장하는 우산은 평민이 사용할 수 없는 절대 군주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인들이 거대한 깃털과 비단으로 만든 차양을 왕의 머리 위에 받쳐 들고 행진함으로써 지배자의 권위와 신성을 과시했습니다.
비가 많은 유럽에서 이 파라솔이 비를 막는 방수포 도구로 변모하기까지는 수천 년의 시간과 한 괴짜 신사의 끈질긴 고집이 필요했습니다.
30년 동안 조롱을 견딘 사나이
1750년경, 영국의 여행가이자 자선사업가였던 **조나스 핸웨이(Jonas Hanway)**는 페르시아와 러시아를 여행하던 중 비를 막는 용도로 개조된 차양을 목격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기름칠을 한 두꺼운 명주천과 고래 뼈대로 만든 우산을 주문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언제나 우산을 머리 위로 펼쳐 들고 당당하게 런던 시내를 활보했습니다.
가장 격렬하게 반발한 집단은 런던의 합승 마차(Hackney carriage) 마부들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평민과 귀족 모두 마차를 탈 수밖에 없는데, 우산이 보급되면 자신들의 생계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부들은 핸웨이를 향해 “계집애 같은 놈”, “프랑스 첩자”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말채찍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핸웨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17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장 30년 동안 비 오는 날마다 우산을 들고 거리를 지켰습니다. 핸웨이가 사망할 무렵, 런던 시민들은 그가 감기나 폐렴에 걸리지 않고 누구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조롱은 서서히 실용적인 감탄으로 바뀌었습니다.
고래 뼈에서 강철로, 그리고 접이식으로
초기 우산은 너무나 무겁고 불편했습니다. 비를 머금은 두꺼운 캔버스 천과 물푸레나무 자루, 고래수염 살대로 만들어져 한번 젖으면 무게가 몇 킬로그램에 달했습니다.
1852년, 영국의 금속 기술자 **새뮤얼 폭스(Samuel Fox)**가 단면이 U자 모양으로 굽어진 얇은 강철선 우산살(Paragon Frame)을 발명하면서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가볍고 슬림한 우산이 탄생했습니다. 강풍이 불어도 뒤집히지 않는 유연성과 가벼움을 겸비한 폭스의 강철 우산은 전 세계로 폭발적인 수출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1928년 독일의 한스 하웁트(Hans Haupt)가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는 ’포켓 우산(Knirps)’을 개발하면서, 우산은 마침내 모든 현대인의 가방 속에 상비하는 필수 생활 도구로 완성되었습니다.



